요한 제바스티안 바흐(J.S.Bach 1685-1750)
- 출생: 1685년 3월 31일 (구력: 3월 21일)
- 출생지: 아이제나흐(Eisenach), 튀링겐 지방, 신성 로마 제국 (오늘날 독일)
- 사망: 1750년 7월 28일, 독일 라이프치히(Leipzig)
- 국적: 독일
- 직업: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음악 감독
- 음악 시대: 바로크(Baroque)
'바흐(Bach) 라는 말은 독일어로 '실개천'이라는 뜻입니다.
베토벤이 평하기를 "바흐는 실개천이 아니라 대양이다."라고 말하곤 했답니다.
그만큼 위대한 음악가라는 표현이지요.
명석함과 기술적인 완전성, 강인하고도 견실함, 이러한 그의 음악은 오늘날까지도 바흐의 음악에 적대적인 보증을 부여해 왔습니다.
그가 살아 있는 동안 그의 뛰어난 음악 솜씨에 사람들은 절찬을 아끼지 않았으나 그의 예술적 가지체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있었겠지요?
냉철한 기교적 완벽성에 정신성과 인간성이 결핍된 하나의 장인으로 보게 했을지도 모르고, 기술주의적 교조주의자로서의 바흐는 젊은 세대로부터 특히 감정 표현의 빈곤을 공격받기도 했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바흐를 말할 때, 바흐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인정한 기술적 완벽성 외에 깊은 정신성과 숭고한 인간성, 신과 같이 완전한 음악가의 이상적인 상을 마음속에 그리게 되지요. '바로크의 총괄좌' 혹은 '보수주의자'라고 일걸어지는 이 거장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하여 오늘에 이르기까지 전위음악이나 파퓰러 음악에 할 것 없이 모든 것에 끊임없는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할 수 있지요.
바흐는 어려서 부모를 잃고 고생하며 역경 속에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바흐는 전적으로 현실주의자일 수밖에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경건한 종교인으로서의 교회음악가가 아니라 한푼이라도 수입이 많은 직업, 유리한 일을 구하기 위해 프로의 모습을 보였겠지요.
교회는 바흐에게 궁정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한 작업장이기도 했답니다. 장례식은 임시 수입의 근원이었고, 커피숍의 아르바이트도 소중한 일 중의 하나였지요. 그러한 바흐에게서 숭고한 모습을 구하느니보다는 오히려 현실적인 사회인, 생활인의 모습을 느끼고 인간다움을 구해야 할거에요. 바흐의 고상한 음악이 그러한 현실을 넘어서 빛나고 있는 데에 참다운 예술가의 창조 가치가 있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부터 바흐는 대단한 공부벌레였답니다. 17세기 후반에 역사상 가장 뛰어난 음악가를 탄생시킨 바흐의 가문은 200여 년에 걸쳐 50명 이상의 음악가를 배출했지요. 그는 10세 때 양친이 돌아가시자 형 크리스토프 밑에서 자랐습니다. 바흐는 형의 악보를 오랜 기간동안 숨어 달빛 아래서 필사했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지요. 그의 연구는 평생토록 쇠퇴하지 않았고 커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 음악에 조예가 깊어져 이것이 그의 광대한 음악적 기반 형성에 큰 역할을 하게 됩니다.
바흐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웠고 당숙 요한 크리스토프의 오르간 연주를 들어면서 성장했습니다.
자립을 해야 했던 바흐는 1700년 봄 북독일의 뤼네부르크로 가서 그곳 고등학교에서 루터파의 교육을 받으면서 교회의 합창단원으로서 북독일 악파의 다양한 종교음악과 친숙해졌습니다. 1702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이듬해 바이마르 궁정악단의 바이올린 주자로, 3개월 후에는 아른슈타트의 교회 오르간 주자고 채용되었지요. 오른간 주자는 오랫동안 희망했던 자리였기에 성능이 좋은 오르간이 설치된 새 직장에서 그는 열심히 오르간 연주법과 작곡법을 공부했답니다. 그는 성가대를 훈련시키는 한편, 과거와 당시 대가들의 작품을 필사적으로 연구하여 점차 독특한 스타일을 확립해 나갔지요. 유명한 라단조의 <토카타와 푸가>도 이 시기에 쓴 작품입니다.
바흐는 대략 17세기 초에 시작되는 바로크 음악의 총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음악은 우선 독일의 전통적인 대위법 예술 속에서 성장했으며 북독일의 북스테후데와 남독일의 파헬벨의 오르간 음악의 작법을 습득한 결과였습니다. 다음에 코렐리와 비발디로부터 이탈리아 음악의 명쾌한 협주 양식과 풍부한 화성 그리고 라틴적인 형식감을 도입했으며 륄리와 쿠프랭에게서 프랑스 음악의 섬세한 건반작법과 대담한 프랑스식 서곡을 배웠지요. 이러한 당시의 온갖 음악의 전통과 각 국민의 양식이 바흐의 천재적인 개성 속에서 융화되어 긴장도가 높은 독특한 음악을 낳게 한 것이지요.
그의 작품에는 베토벤이 낭만주의를 예견하고 바그너가 20세기의 음악을 예견한 것과 같이 훗날 발생한 고전주의 양식을 암시하는 많은 특성이 인정되기도 합니다. 그는 1750년, 전해에 일어났던 뇌졸중과 시력감퇴로 체력이 두드러지게 약해졌는데 신분을 속인 가짜 안과의사에게 마취와 소독도 없이 수술과 치료를 받게 되면서 결국 병을 악화시키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지요.
결국 그해 7월 28일 밤 65세의 일기로 바흐는 생애를 마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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